하퍼 리 - 마킹버드 죽이기
마킹버드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이현수
‘The Great American Read 2018’은 미국의 공영 방송 PBS (Public Broadcasting Service)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찾아 내는 작업이었다. 첫 단계로 PBS는 소설의 장르, 주제, 출판 연도, 출판 국가를 불문하고 영어로 출판된 명작 소설 100권을 후보작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이 후보작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는 투표를 6개월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실시하였는데 미국인 4백만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하퍼 리(Harper Lee)의 ‘To Kill A Mockingbird’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아 1위를 차지하였다고 PBS가 2018년 10월 23일에 발표하였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America’s best-loved novel)이라고 인정받은 것이다. 1960년에 발간되어 지금껏 4천만부 이상이 팔린 이 소설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애독되는 소설이다.
미국 남부 지역에 서식하는 mockingbird는 다른 새들의 울음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새이다. 인간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며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 새를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는 속설이 미국 남부에 있는데 소설의 제목이 이 속설을 반영하고 있다. 소설 제목이 한국에서는 ‘앵무새 죽이기’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mockingbird는 앵무새(parrot)와는 다른 새이다. 영한 사전에는 mockingbird가 ‘입내새’로 번역되어 있다 (입내: 소리나 말로써 내는 흉내).
‘To Kill A Mockingbird’는 일인칭 소설인데 스카웃(Scout)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진 루이스(Jean Louise)가 화자(話者)이다. 이 소설은 어른이 된 스카웃이 6세부터 9세까지 미국 남부 앨러배머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스카웃은 아버지 애티커스(Atticus), 네 살 위인 오빠 젬(Jem: Jeremy의 약칭), 흑인 가정부 캘퍼니어(Calpurnia)와 살고 있다. 애티커스는 혼자서 두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홀아비인데 인품이 돋보이는 변호사이다 (애들 엄마는 스카웃이 두 살 때 사망). 엄격하면서 자상한 애티커스는 아들과 딸의 우상이다. 스카웃은 매우 총명하나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여자 아이로 어느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오빠와 수시로 다투고 걸핏하면 다른 남자 아이들과 주먹 싸움을 한다.
이 소설에는 스카웃과 젬이 친구 딜(Dill)과 어울려 장난치는 에피소드, 개성이 강한 마을 사람들의 언행, 스카웃이 입학한 미국 남부 지방 초등학교의 혼란스런 교육 현장이 진지하면서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어 독자를 매료시킨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 큰 사건이 터진다. 한 흑인 남자가 백인 처녀를 성폭행하였다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흑인 피고가 돈이 없어 애티커스가 관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흑인 편을 든다고 비난하지만 그는 여론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피고의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 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백인 처녀의 주장이 거짓임을 에티커스가 법정에서 논리 정연하게 증명하여 스카웃과 젬은 피고가 무죄로 풀려 날 것이라 확신했으나 배심원들은 유죄 판결을 내린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 법정에서 흑인이 백인에게 승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흑인 죄수는 탈옥을 시도하다가 감옥 간수에 의해 사살된다. 양식 있는 현지 언론인은 죄 없는 흑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당한 판결은 마킹버드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신문에 쓴다. 즉 죄악이라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이겼으나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백인 처녀의 아버지 밥 이웰(Bob Ewell)은 애티커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기회를 노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캄캄한 밤에 그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스카웃과 젬을 덮친다. 젬은 팔이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스카웃의 옆집에 사는 부 래들리(Boo Radley)가 이웰을 칼로 살해하여 둘을 구해 준다.
보안관은 이웰의 죽음은 래들리가 두 아이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 범죄가 아닌데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은둔 생활을 하는 래들리를 쓸데없이 괴롭히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이웰이 넘어지면서 자기 칼에 찔려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며 이 사건을 종결한다. 애티커스가 보안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스카웃은 옳은 일을 한 래들리를 법으로 심판하는 것은 마킹버드를 죽이는 것과 같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스토리도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은 작가가 백인 우월 주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사법 정의의 부재, 하류층 백인들과 대다수 흑인들의 빈곤과 무지를 부각하며1930년대의 미국 남부 사회상(社會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미국 역사의 어두운 한 단면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 하퍼 리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196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8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 되었고 남우 주연상 (Gregory Peck)을 포함하여 3개의 오스카를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