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이현수
유진 오닐(Eugene O’Neil)외에 또 한명의 유명 미국 극작가로 아서 밀러(Arthur Miller)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15년에 뉴욕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소규모 제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공황때 파산했다. 고교 재학시 미식 축구선수로 활약한 밀러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는데 대학에서는 미식 축구를 그만 두고 연극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주요 작품은 1947년에 발표한 ‘내 아들들(All My Sons)’이다. 이 극은 결함있는 군수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제조업자가 자기의 가족에 대한 의무와 조국의 군인들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겪는 심한 갈등을 그린 드라마다. 이런 강렬한 갈등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이 밀러의 대표작이다. 이 극은 1949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는데 대성공을 거뒀고 밀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절찬리에 공연된 이 극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극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공 윌리 로먼(Willy Loman)은 제품의 샘플을 들고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 다니며 구입 주문을 받는 세일즈맨이다. 나이가 들면서 고객이 점점 떨어져 나가 그는 실적 부진으로 결국 회사에서 쫒겨 난다. 고등학교에서 출중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큰 아들은 윌리가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너무 충격을 받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생 낙오자가 된다. 작은 아들도 변변찮다.
윌리는 실패한 세일즈맨일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도 아버지로도 실패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도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는 가족이 사망 보험금을 타서 새 출발을 하기를 원하며 자살한다.
윌리에게는 자기가 스스로 되기를 원한 인간상이 있었고 그는 자기가 바로 그런 인간이라는 환상속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했는데 그는 끝까지 이를 깨닫지 못 했다. 그들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윌리와 의견을 달리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윌리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정도로 가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윌리가 가족을 위한다는 의도로 자살했을 때 그들은 비탄에 잠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윌리이지 보험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떠돌이 세일즈맨으로 사는 것을 유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윌리의 인생이었다. 그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세상의 대부분 보통 사람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우리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우리는 윌리가 살았던 사회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고 그가 버림 받았던 것 처럼 우리도 버림 받을 수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이런 인식 때문에 ‘세일즈맨의 죽음’이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비극(悲劇)이다. 한 평범한 남자의 비극일뿐만 아니라 그를 오도하고 배신한 사회 전체의 비극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후에도 밀러는 걸출한 작품을 많이 써서 극작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섹스 심벌(sex symbol)이자 멍청한 금발미녀(dumb blonde)의 대표격인 여배우 매릴린 먼로의 세번째 남편이 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두 사람의 결혼은 5년만에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2005년에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