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인생 2막
이현수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의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막상 은퇴 시기가 되면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은퇴와 동시에 직업에 따른 사회적 신분을 상실하게 되며 또한 일하며 형성한 인맥이 소멸되어 사회로부터 소외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에는 그런 우려를 상쇄하고도 남을 이점(利點)이 있다. 우리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하느라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진하여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은퇴는 우리를 일과 관련된 책임에서 해방시키고, 우리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의 실현을 위해 도전하거나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활동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더욱이 은퇴는 우리에게 가족 및 지인들과의 관계를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생업에 종사하는 동안 늘 시간에 쫓기느라 가족 및 지인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은퇴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
은퇴로 인해 생긴 일상생활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처음에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은퇴자는 인생 2막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오래전에 은퇴한 나는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데 주로 책 속에 파묻혀 산다. 근래에 화제가 된 새 책을 사서 읽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구입하였지만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책들을 꺼내 읽고 있는데 독서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은퇴 후 나는 블록(blog)을 시작했다. 모진 세파를 헤치며 오래 산 사람으로서 연륜이 쌓인 생각과 의견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블록은 자기 표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칼럼을 쓰고 있다. 영어로 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즈에 기고하고, 한국어로 쓴 글은 캐나다 한국일보에 기고하고 있다. 그리고 신문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모아 선별하고 재구성하여 여러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로써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또한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국내외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은 삶에 새로운 활력소를 준다. 그런데 가장 자주 방문한 곳은 내가 반세기 전에 떠난 한국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는 옛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한다. 나는 한국의 산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결같이 아름답고 접근하기 쉬우며 등산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등산은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취미이다.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나 나는 나름대로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