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가는 대로

가깝고도 먼 일본

이성재 2013. 3. 27. 04:56

                                             가깝고도 먼 일본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일본인들은 자의적이고 편협한 역사관에 갇혀 있다근대사(近代史)에 관해 일본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표출한 말과 글을 내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우선 한반도 강점에 대한 일본인들의 견해부터 살펴 보자. 일본은 명치유신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 그들의 역할모델은 영국, 프랑스, 독일등 유럽의 열강이었다당시 세계 각처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유럽의 열강을 본받아 일본은 해외 진출의 야망을 키웠고 인접국가인 우리나라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그러다가 청나라및 러시아와 충돌하게 되었고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전리품으로 일본의 수중에 들어 가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당시의 국제 정세로 보아 힘없는 우리 나라는 일본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어느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점한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가해자로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이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르던 태평양전쟁(The Pacific War)에 대한 일본인들의 견해를 살펴 보자일본이 아시아를 통째로 삼키려는 야욕에서 비롯된 태평양전쟁에 대해 일본인들은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린다미국 정부가 석유, 강철등 품목을 일본에게 수출하는 것을 금하고, 중국으로부터 일본군 철수등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함으로써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이다진주만 습격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진정한 피해자는 일본이라고 역설적인 주장을 한다그 이유는 미국이 비겁하게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죄 없는 일본인들이 수없이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중 자기네들이 다른 민족에게 자행한 온갖 야만적인 살육행위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도 없는 일본인들이 자국이 인류 역사상 핵폭탄의 첫 희생국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동정을 받을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모든 죄과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일본인들은 순진하게(?) 믿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진정한 목적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 내는 것이었다고 선전했고 실제로 대다수 일본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태평양전쟁중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을 동남아에서 일시적으로 축출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석유, 철강석, 고무등 원자재 생산국을 자기들 수중에 넣는등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였지 억압받고 있는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그들보다 더 잔학한 통치를 하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일본인들은 받아 들이지 않는다.

 

20세기에 들어 와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자처하다가 태평양전쟁에서 참패하고 미점령군의 통치를 받은 것을 일본은 그들 역사상 최대의 수치로 알고 있다자기들이 참혹한 전쟁을 도발한 것에 대한 뉘우침은 없고 패전만을 원통해한다.  주변국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인들이 A급 전범들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도 그들을 진짜 전범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일본이 전쟁에 패한 죄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승자의 판단에 따라 그들이 A급 전범으로 단죄되어 처형되었울 뿐이지 실제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들이라고 일본인들은 믿고 있다.    

 

일본은 침략의 과거사를 직시하기는 커녕 변명하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국제사회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편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 왜곡이라는 만행을 저지르고 정치인들은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망언을 쏟아 내는 것이다우리는 나치시대와 단절한 독일처럼 일본이 군국주의시대의 과오를 반성하고 선린국가로 새 출발하기를 희망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런 일이 일어 날 것 같지 않으니 안타깝다. 우리에게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먼 나라이다.   

 

한국일보 (토론토)

201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