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한담]
미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헤밍웨이
이현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1899년에 아버지가 의사이고 어머니는 음악가인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출생지인 시카고 근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학창시절에는 영어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저널리즘 과목을 수강한 후 학교신문에 자주 기고를 하고 편집에 참여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잠시 지방 신문에서 수습 기자로서 실무를 배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에 18세의 헤밍웨이는 시력이 나빠 미국 육군 입대를 거부당하자 미국 적십자사 구급차 운전수로 지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했다. 큰 부상을 당한 그는 수술을 받고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렇게 일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고 미국으로 귀환했다.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캐나다의 Toronto Star에 취직이 되어 토론토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다. 그 후 그는 Toronto Star의 파리 특파원이 되어 프랑스로 건너 갔다. 그 곳에서 저명한 시인, 소설가, 화가 등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약2년간 파리 특파원 생활을 하고 토론토에 귀환하여 기자로 활동하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 갔는데 이번에는 신문 기자가 아니라 작가로 살기 위해서였다.
헤밍웨이의 첫 소설 ‘해는 역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가 1926년에 발간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의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은 1927년에 발간되었다.
헤밍웨이는 파리 생활을 접고 1928년에 미국으로 돌아 가 플로리다 키웨스트(Key West)에 정착했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를 써서 1929년에 발간했는데 이 소설은 제1차세계대전을 다룬 미국 최고의 전쟁 소설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소설로 헤밍웨이는 미국의 주요 현대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두 젊은이가 펼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비극으로 끝난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어떻게 끝낼지 고심하며 결말을 47번이나 고쳐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1939년에 거주지를 쿠바의 아바나로 옮겼다. 그리고 겨울은 아바나에서, 여름은 아이다호(Idaho)주의 케첨(Ketchum)에서 보냈다.
헤밍웨이는 1937년에 자기가 직접 취재한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써서 1940년에 발간하였는데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소설은 헤밍웨이를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1944년에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파리에 입성할 때 헤밍웨이는 현장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고 또한 종군 기자로서 연합군의 전투 상황을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하여 상세히 보도하여 그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저술한 그의 마지막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1951년에 발간하였다. 이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자연에 도전하여 불굴의 정신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인간상 (人間像)을 묘사하였다. 이 소설은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노벨상 위원회는 1954년에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이 소설은 세계 많은 나라의 학교에서 미국 문학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가르친다.
헤밍웨이는 극적(劇的)인 삶을 살았다. 거리낌 없이 여성 편력을 했고 (네 번 결혼), 북미, 유럽, 남미로 거처를 옮겨 가며 기자로,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큰 동물 사냥, 심해에서의 보트 운행, 바다 낚시 등 모험적인 스포츠를 즐겼으며 스페인의 투우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의 투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투우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투우의 진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사파리를 하다가 두 번이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을 뻔했다. 이 사고로 입은 부상으로 건강이 나빠져서 말년에 고생을 했다. 그는 여러 번 당한 부상과 과음의 후유증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더 이상 집필을 못하게 되자 낙담하여 삶의 의욕을 잃고 1961년에 엽총으로 자살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향년 61세였다.
헤밍웨이의 많은 작품들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간주된다. 헤밍웨이는 ‘빙산이론(Iceberg Theory)’에 근거한 독특한 창작 기법을 사용했다. 수면 위에 나와 있는 빙산의 일각(一角)만을 보고도 우리는 수면 아래의 빙산의 크기를 짐작한다. 이처럼 작가가 소설에서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세세히 기술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의도를 은연중에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빙산이론’이다. 즉 기술(記述)이 아니라 생략을 통해서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략이론(Theory of Omiss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헤밍웨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신문기사 작성 경험을 토대로 창안한 문체이다. 그는 19세기의 현란한 문체를 거부하면서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하며 간결한 문장으로 소설을 썼다. 그가 영문학의 문장을 개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20세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독자들은 간결한 문체의 현대 영어 소설들을 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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