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이 빗나간 미국 대선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정치에는 경험이 전무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선전을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여러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공화당 후보로 지명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선거 유세중 트럼프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무례한 행동을 했고 사려 깊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 냈다. 그의 막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그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는 누가 봐도 실현 불가능한 이런 공약(?)을 거리낌 없이 남발했다.
나는 CNN이 생중계한 대선 토론을 지켜 봤는데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으며 발언 내용에 깊이가 없었고 논리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그는 자기가 당선되면 미국의 모든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클린턴 면전에서 그녀를 ‘나쁜 여자(nasty woman)’라고 불렀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나는 과거에 미국 대선 토론을 여러 번 시청했지만 트럼프처럼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후보를 본 적이 없다. 또한 그는 대선 결과에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그 때 가봐야 알겠다고 상식밖의 대답을 하여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시청자들은 토론의 승리자는 클린턴이라고 판정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를 인종 및 성차별주의자라고 매도했다. 그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트럼프에게 실망한 공화당 지도부와 유력 인사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고 유세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상하원 선거에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고 노심초사했다.
지난 11월 8일 밤 나는 CNN의 개표 중계 방송을 시청하다가 잠 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3시경에 잠에서 깨어 개표 결과를 보려고 TV를 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CNN이 트럼프의 승리 연설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각종 여론 조사 뿐 아니라 출구 조사에서도 클린턴의 우세를 예측했는데 어떻게 이런 뜻밖의 결과가 나왔을까?
트럼프는 약10년간 인기 리얼리티 쇼 ‘The Apprentice’를 진행하면서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고,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유능한 최고경영자라는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각인 시켰다. 따라서 미국을 통치해 온 기존 정치 지도자들에게 실망한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새로운 해결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자 계층의 나이 많은 백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트럼프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들은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피해를 봤고 다양화하는 미국 사회에서 자기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여러 나라들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의 폐기 또는 재협상을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외국에 내보낸 회사들을 맹렬히 공격하며 미국 제일주의 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함으로써 현실에 불만이 있는 유권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또한 불법이민자들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선언하여 반이민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은 그가 미국이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들에게 트럼프의 교양과는 거리가 먼 언행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경륜만으로 따지면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대통령감으로 더 적격이겠지만 그녀에게는 득표에 불리한 개인적인 약점이 있었다. 퍼스트 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한 그녀는 다수의 미국인들이 불신임하는 기존 정치인 집단의 대표격이었고, 그녀가 정직하지 않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팽배했다. 더욱이 그녀가 국무장관 업무 수행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녀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결정적으로 클린턴에게 불리했던 것은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지난 8년간 백악관을 차지 하고 있었으므로 많은 미국인들이 또 다시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정당 소속의 대통령이 8년간 집권하고 나서 같은 당의 후보가 배턴을 넘겨 받아 다시 집권한 예는 미국 역사에서 드물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번 대선은 공화당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트럼프라는 유별난 후보가 지명되어 공화당이 휘청거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에는 유리천장이 있었다. 다수의 미국인들은 여성 대통령을 맞이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같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를 상대해야 할 한국 정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가 한미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