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기행
이현수
오래 전 일이지만 나는 호주에 세 번 갔다. Bank of Montreal 토론토 본점에서 근무하면서 시드니(Sydney)로 출장을 가서 열흘간 체류한 것이 첫 번째 호주 여행이었다. 몇년후 한국에 파견되어 서울지점장을 역임한 후 당시 호주 최대 은행인 National Australia Bank의 서울지점장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본점이 있는 멜번(Melbourne)에 가서 일주일, 시드니에 가서 일주일을 체류한 것이 두 번째 호주 여행이었다. 그후 휴가를 내어 아내와 함께 New Zealand를 구경하고 브리즈번(Brisbane)과 Gold Coast를 거쳐 시드니에 갔으니 그것이 세 번째 호주 여행이었다. 가장 인생에 남는 것은 첫 번째 여행이었는데 아래의 글은 그 여행에 대해서 쓴 기행문이다.
호주의 별명은 The Land Down Under, 줄여서 Down Under이다. 적도 아래에 떨어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주의 면적은 한반도의 35배가 된다. 호주는 섬으로 된 대륙이다. 땅의 3분지 1이 불모지이고 2천7백만명에 육박하는 호주 인구의 대부분이 호주 총 면적의 0.13%에 불과한 연안 도시들에 몰려 살고 있다. 사실상 5대 도시, 즉 Sydney, Melbourne, Brisbane, Perth, Adelaide 가 호주 인구의 90% 가량을 수용하고 있다.
나는 금요일 하오 5시에 토론토 피어슨 공항을 출발하여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그 다음 다음날 일요일 새벽 6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였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머문 한 시간을 빼면 20시간 이상 태평양 상공을 비행한 것이다.
호텔에서 짐을 푼 후 피로도 잊은 채 곧장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일요일이라 상점들의 문이 닫혀 있었고 거리도 한산했다.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The Rocks 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시드니에서 제일 오래된 구역인데 Old Sydney 라면 몰라도 ‘The Rocks’라니 지명으로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영국에서 유배된 죄수들이 1788년에 처음 도착하여 정착한 곳으로 지반이 암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우선 The Rocks walking tour에 합류하였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이 거리 저 거리를 도보로 돌며 구경하는 관광 프로그램인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혼자 돌아보았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보잘것없는 작은 건물들도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 다시 쳐다보게 된다. 여러 거리에 얽힌 일화도 재미 있었다. 예를 들어, Suez Canal이라고 불리는 작은 골목은 옛날에 sewage (시궁창)이었다고 한다. The Rocks는 호주 역사 200년을 증거하는 유서 깊은 곳으로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드니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꼽힌다. 자연 환경도 아름답거니와 도시 전체가 조화 있게 꾸며져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드니를 상징하는 것이 저 유명한 Sydney Opera House이다. 시드니의 그림 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오페라 하우스는 The Rocks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1973년에 개관되었는데 건립하는데 14년이나 걸렸다. 공사 비용은 복권을 팔아 전부 충당되어 납세자의 부담은 없었다. 오페라 하우스의 특이한 지붕 구조가 사람의 눈길을 끄는데 이 지붕을 짓는데 흰색과 크림색의 타일 일백만개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시드니 항구에 자리 잡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어 내가 탑승한 항구 유람선에서 바라본 자태가 특히 장관이었다.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뿐 아니라 각종 예술 활동의 무대가 되는데 커다란 공연장을 넷이나 갖고 있는 내부도 외형 못지 않게 압도적이었다.
나의 시드니 체류 기간은 열흘에 불과했고 출장중이라 낮에는 일을 해야 했지만 주말이 둘이나 끼어 있어 관광하는데 시간의 제약을 느끼지 않았다. 주중에도 일만 끝나면 부지런히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시내에 산재해 있는 관광 명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호주박물관 (Australian Museum)에서는 반나절을 보냈다. 이 박물관은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소장품도 뛰어나지 않았으나 내가 호주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침 정규 안내자가 자리를 비우고 없어 나는 운 좋게도 박물관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인류학자의 안내를 받았다. 그가 안내한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내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는 바로 전날 캐나다의 유명한 과학자 David Suzuki를 직접 안내하였노라고 한다. 그는 호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로서는 기대하지 않던 큰 수확이었다.
나는 시드니 체류중 우연히 친구 한 명을 찾아 내었다. 오래 전에 서울의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옛 둉료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자주 듣던 백호주의 (White Australia Policy)는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주로 아시아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다. 유럽에서 이민을 오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이민자들은 대부분 시드니로 몰려 드는데 그 때문인지 거리에서 황색인종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인종 차별도 별로 없다니 호주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저 유명한 Bondi Beach에도 가 보았다. Bondi Beach는 시드니에서 제일 큰 해변인데 그 보다는 여자 수영객들이 유방을 노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topless beach로 더 유명하다. 탐스런 유방을 드러내 놓고 모래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젋은 여자들의 자태도 볼만 했지만 긴 머리카락을 펄럭이며 물속에서 뛰노는 topless bathers는 동화 속의 인어를 연상케 했다.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호주의 계절은 캐나다와 정반대이다. 내가 시드니에 간 것이 2월초였으니 토론토는 한창 겨울이었으나 시드니는 여름 복중이었다. 내가 도착한 날 시드니는 섭씨 40도를 기록했다. 10년만에 맞이하는 무더위라 한다. 그러나 습도가 높지 않아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토론토에서 추위에 떨며 집밖에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다소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는 시드니의 여름을 맘껏 즐겼다.
아무튼 아름답고 따듯한 시드니를 뒤로 하고 눈보라치는 토론토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망설임이 따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후기: 한국에서는 Melbourne을 ‘멜버른’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많은데 ‘멜번’이 원음에 더가깝다. 우리 생각에는 Brisbane은 ‘브리스베인’이라고 발음해야 할 것 같은데 호주인들은 ‘브리스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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