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유럽 일주 여행

이성재 2024. 3. 6. 22:44

유럽 일주 여행

                                                                                                                     이현수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학창시절부터 유럽에 가 보고 싶어했는데 나의 유럽 여행의 꿈은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나는 출발 전에 유럽 여행 안내 책자를 하나 구입했다.  내가 방문할 각 도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책에는 내 주머니 사정에 맞는 호텔 이름과 주소, 그리고 어느 식당에 가서 얼마짜리 식사를 할 수 있는지도 적혀 있었다. 그 외에 내가 꼭 봐야 할 관광명소의 위치 및 이용할 교통 수단 등등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 1978년 여름 나는 이 책을 손에 들고 가족 (아내와 5살과 4살난 어린 아이 둘)을 거느리고 대장정에 나섰다.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아테네를 유럽 여행의 첫 방문지로 택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 가는 도중에 그 유명한 아크로폴리스, 그리고 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파르테논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숙소를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잡고 제일 먼저 파르테논으로 달려 갔다. 아테네의 대표적인 건물인 파르테논은 기원전 432년에 완공되어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Athena)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신비롭게 아름다웠다. 그 옛날에 이처럼 우아한 대리석 건물을 지은 그리스인들의 미적 감각과 건축 기술이 놀라울 뿐이다. 신전 내부 벽의 부조 조각품들은 여행 마지막 방문지인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었다 (19세기초에 영국인 Lord Elgin이 떼어 내서 영국으로 가져 간 이 부조 조각품들은 그리스의 거듭된 반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안 돌려주고 있다). 마침 대학 동창 하나가 아테네에 살고 있어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아테네에 산재해 있는 많은 유적을 구경하였다.

 

두 번째로 들린 도시가 로마이다. 한때 세계의 수도라고 불렸던 로마는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석조 건물들이 즐비하여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유서 깊은 유적이 많지만 특히 콜로세움, 판테온,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이 장관이었다.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고 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 가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최후의 심판도 감상했다.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인 카타콤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이곳은 로마 제국의 박해기에 기독교 신자들의 피난처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의 로마인들은 제국의 운영에서 도로의 정치적, 군사적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점령하는 모든 지역을 로마로 연결하는 도로망을 구축하였다. 모든 도로의 종착지가 로마였기 때문에 All roads lead to Rome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기원전 312년에 완공된 아피아 가도(Via Appia)이다.

 

나는 아피아 가도를 찾아가 걸어 보았다. 이 길을 따라 걷자면 조그만 성당이 하나 나온다.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탄압 때문에 로마 밖으로 피신하던 베드로가 로마를 향해 걸어오는 예수님의 환영(幻影)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Domine, quo vadis?)라고 물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그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고 도미네 쿼바디스 성당 (Chiesa del Domine Quo Vadis)이라고 명명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로마로 가고 있다(Eo Romam iterum crucifigi)라고 대답하셨는데 이 말은 듣고 부끄럼을 느낀 베드로는 곧장 발길을 돌려 로마로 되돌아 가 포교를 하다가 붙잡혀 64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베드로의 무덤위에 건립된 성당이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이다.   

 

우리는 비행기로 로마에서 서북쪽으로 이동하며 취리히, 뮌헨, , 파리, 암스테르담, 그리고 런던을 방문했다. 새 도시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 가 먼저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첫 날은 현지 여행사의 시내 관광 투어에 합류하여 시내를 대충 돌아보고 다음 날부터는 지도를 펴들고 관광 명소를 우리가 직접 찾아 다녔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들은 건립된 시기와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건축 양식 뿐 아니라 각 도시 풍경이 눈에 띄게 독특했다.     

 

우리는 아테네와 로마를 여행하며 서양 문명의 기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이 두 도시는 과거의 영광에 얹혀 사는 쇠락한 도시 같았다. 그러나 파리와 런던은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서는 입소문으로 전해 들은 도시의 매력을 만끽하기 위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에펠탑에 올라 가 아름다운 시내 전경을 조망하고, 12세기 고딕 건축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성당에 들어가 장엄한 내부를 둘러보고, 센강 유람선을 타고 강변 풍광을 구경하고, 가난한 화가들의 활동무대인 몽마르뜨 언덕에도 올라가 본 것이다. 그리고 길거리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내 앞을 지나 다니는 멋쟁이 파리지엥들을 관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가량 떨어져 있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가 보았는데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명성에 걸맞은 궁전이었다.

 

런던에서는 파란만장한 영국 역사가 깃든 런던탑,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버킹엄궁전 등을 구경하였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본거지였던 런던에서 영어권 문화의 뿌리를 찾는 것이 그것이었다. 파리와 런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의 관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서유럽만을 여행했는데 동유럽에는 철의 장막이 가로 막고 있어서 들어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그 지역의 공산 정권들이 붕괴되고 나서 동유럽이 개방되었고, 나는 2000년 여름이 되어서야 동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 여행에는 아내만 동반했다.  아이들은 모두 성장하여 부모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1978년의 서유럽 여행은 아무의 도움도 없이 여행 안내 책자에 의지하여 독자적으로 했는데 이번에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그룹 투어에 합류하였다. 일행은 20명 정도였는데 모두 한국인이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까지 날라 가서 그 곳에서부터 대형 버스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바르샤바에서 크라코우, 부다페스트, , 잘스부르크,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 포스담으로 이동하며 관광하였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동유럽의 도시들은 서유럽의 도시들 보다 낙후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고풍스러웠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 중에서 부다페스트도 아름다웠지만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가 있었으니 그것은 프라하였다. 프라하의 아름다운 옛 건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동유럽 여행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폴란드에 있는 옛 유태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방문이라 할 수 있다. 나치의 만행이 내가 상상하던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했음을 그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동유럽 여행은 12일이 걸렸는데 워낙 넓은 지역을 버스로 돌자니 이동 거리가 길어서 어떤 날을 7 내지 8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늘 시간에 쫒겼고, 어떤 날은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기도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릴 시간은 물론 없었다. 더욱이 거리에는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집시들)이 들끓고 있어서 소지품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따라서 동유럽 여행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몇 년 후 아내와 나는 이탈리아에 다시 가서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를 구경했고 로마도 다시 한번 가 보았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일주했으며, 터키와 북유럽 4개국, 즉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여러 도시를 둘러봤다.

 

나는 지금껏 9번 유럽에 가서 모두 18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직도 가보지 못한 나라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젠 고령이 되어 다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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