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산천에 매료되어 (I)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캐나다로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국내 여행을 별로 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체류할 기회만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친구들과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당일치기도 하고 1박2일도 하는데 이런 여행을 통해서 나는 수려한 고국 산천에 매료되었다.
이번에는 부여와 그 인근 지역을 돌아 보기로 했다. 부여로 가는 길에 공주(삼국시대의 옛 이름은 웅진)에 들려 사적 제13호인 송산리 고분군을 구경하였다. 웅진시대 (475-538년)의 백제의 왕과 왕족의 고분군이다. 원래는 17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현재는 1-6호분과 무령왕능등 7기의 고분만이 복원되어 있다. 무덤은 굴식 돌무덤과 벽돌 무덤의 두 종류가 있다. 우리는 현지 안내원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무덤안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고 무령왕능에서 발굴된 부장품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부여로 이동하였다. 부여의 삼국 시대 명칭은 사비인데 사비는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이후부터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이를 사비시대라고 일컫는다 (538-660년). 부여에는 한국인의 애창곡 ‘꿈꾸는 백마강’에 등장하는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 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금강 하류의 일부인 백마강, 그 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가 낙화암이다.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을 때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있다. 낙화암에 올라 서서 1,350여년전의 비극을 되새기며 백마강을 내려다 보는 감회가 새로웠다. 낙화암에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건립된 조그만 정자가 우뚝 서 있다. 정자의 이름이 ‘百花亭’이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궁녀의 수가 100여명이었던 것일까? 근처에 있는 ‘고란사’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주 조그만, 보잘것없는 절이다. 구곡간장이 올올이 찢어지는둣 사무친다는 고란사 종소리를 직접 듣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일행중 몇명은 산길을 따라 도보로 하산했고 나머지는 백마강으로 내려가 유람선을 타고 낙화암 주변의 풍광을 감상했다. 부여의 자연경관은 뛰어나지만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보여 주는 유적이 별로 없는 것은 유감이었다.
다시 차를 몰아 마량진으로 향했다. 마량진은 아침에는 일출을, 저녁에는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독교 성경이 맨 처음 마량진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해변에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저녁 식사는 홍원항에서 하였다. 마침 전어철이라 전어를 먹기로 했다. 전어는 맛이 좋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아 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일행중 한 명이 들고 온 이강주, 또 한 명이 몽골에서 공수해온 보드카를 반주 삼아 먹은 전어회, 전어 구이, 전어 무침은 과연 일미(一味)였다. 평소에 먹지 못 하는 생선이라 모두가 포식을 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또 하나의 재미는 이동중에 차안에서 그들과 나누는 환담이다. 재담(才談)은 물론이고 따끈 따끈한 최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는데 가끔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저녁에 서울로 돌아 오는 차안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흥에 취한 한 친구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따라 부르니 노래방이 따로 없다.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친구가 ‘청산에 살으리라’를 멋지게 불러 기선을 잡자 이에 질세라 다른 친구가 ‘그리운 금강산’을 열창한다. 두 사람에게 일행 모두가 앙코르를 연발한다.
출발지인 분당에 되돌아 오니 밤 9시 30분, 장장13시간만의 귀환이었다. 오랜 세월 외국에 나가 살다가 고국에 돌아 오니 모든 것이 새롭고 죽마고우들과 어울려 여행을 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한국일보 (토론토)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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